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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소통

마을명소 예산군 내의 아름답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발굴, 보전, 공유하기 위해 마을명소를 소개합니다.

No.552021-05-05Hits.1,033

대흥면 동서리 마을명소

대흥양조장

예산군행복마을지원센터

  • 위치 대흥면 동서리
    (충남 예산군 대흥면 예당로 882 )
  • 대상물·시설분류 판매시설

세월이 익어가는 대흥양조장.



대흥양조장은 의좋은 형제 공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데, 정원이 아름답기로 소문 나있다. 잘 가꾸어진 정원은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한다.



이 곳에 집주인이 거주하고있어, 대흥양조장의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3대째 술을 빚어 온 대흥양조장은 할아버지가 덕산에서 양조장을 운영하셨고, 아버지가 경찰 공직에 계셨다가 대를 이어 양조장을 하셨는데 이때 대흥으로 이사하였다고한다. 2대째 이어온 아버지께서는 이 건물에서 1960~1990년도까지 양조장을 하셨다. 그 당시에 이복현(65세) 사장님의 기억으로는 쌀로 밥을 지어 술을 빚는 냄새가 좋았다고한다.

벽에 남아있는 1920년대 일제강점기 신문을 보고 이 건물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이복현 사장님은 대흥양조장을 막걸리 박물관으로 만들어 시음과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

현재 발효독(술독), 배달 자전거, 양조통, 온도계, 종고함, 절구통, 맷돌 등이 전시되어있다. 특히 군데 군데 보이는 술통과 오래된 발효독은 대흥양조장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서 만들어낸 우리나라 전통주 막걸리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민속주로써 빛깔이 뜨물처럼 희고 탁해 탁주(濁酒), 농주(農酒), 회주(灰酒)라고 불리기도한다. 알코올 도수는 약 6~7도 정도며 각 지방의 관인 양조장에서 제조되고있다. 막걸리는 문헌상 1837년으로 쓰인 으로 추정 되는 양주방의 혼돈주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이것은 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은 뒤 숙성되면 술 밑을 체에 받아 버무려 걸러낸건데,이 과정을 거치면 쌀알이 부셔져서 뿌옇게 흐린술이 된다고 한다.



벽에 붙어있는 1920년대 일제시대신문을 보고 이 건물이 1920년대 건물이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살아온 세월 보다 더 오래된 이 건물은 전통과 역사를 함께 해온 곳이기에 낡고 오래된 이곳에

모든 것이 간직한 가치와 수십년의 이야기는 흉내낼 수 없는 무게와 흔적을 담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다.


그후 한말(韓末)에 주세법이 제정으로 1964년부터 막걸리에 쌀의 사용이 금지됨에 따라 도입 양곡을 섞어 빚게되었고 이때부터 막걸리는 대중과 멀어지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러다 쌀 생산량이 늘고 소비량은 줄어 쌀이 남아돌게 되자 1971년부터 쌀막걸리가 다시 허가되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찹쌀, 멥쌀, 보리쌀, 밀가루 등 찐 다음 수분을 건조시킨 뒤, 누룩과 물을 섞고 일정한 온도에서 발효시킨 다음 청주를 따로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걸러 짜내는 방법으로 만든다고한다.



사실 막걸리의 이름은 이 과정에서 생겨난 것인데 청주를 거르기 전, 증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막 걸러 마신다고 하여 ‘막걸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복현사장님은 막걸리의 제조과정 중 술맛을 좋게 하는 3가지 온도 유지, 좋은 쌀, 물 맛으로 인생의 향기를 담은 고운 색깔을 띄는 막걸리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전통을 이어가고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보탬이 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대흥양조장은 초등교과서에 실릴만큼 유명한 이성만 형제의 효행과 우애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마을에 있다.

고려 말 조선 초 예산군 대흥 지역의 효자이자 우애가 좋았던 이성만, 이순 형제가 살았다. 이 형제의 이야기와 함께 대흥은 2009년 대흥슬로시티로 지정되면서 자연생태를 보존해나가고있다.'

슬로시티는 자연 생태 보호와 전통 문화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천천히 만들어진 슬로푸드, 지역 특산품 공예품 지킴이, 지역민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대흥양조장은 슬로시티 목적에 맞게 천천히 맛있게 익어가는 곳이다. <주소 : 대흥면 동서리 187-3> 


글/사진 오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