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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소통

마을명소 예산군 내의 아름답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발굴, 보전, 공유하기 위해 마을명소를 소개합니다.

No.582021-05-05Hits.771

대술면 화산리 마을명소

매방앗간

예산군행복마을지원센터

  • 위치 대술면 화산리
    (충남 예산군 대술면 화산망실길 150 )
  • 대상물·시설분류 농∙축∙수산시설

망실 매방앗간과 느티나무 아래

자연의 소리를 듣다



화산리는 망실(망곡, 곰우리 북동쪽 골짜기에 있는마을), 곰우리(고물리, 화산리에서 가장 큰 마을), 묵지(곰우리 서쪽에 있는 마을), 능미(묵지 북쪽 골짜기에 있는마을), 도봉골 등 5개의 자연마을이 합쳐져 붙여진 이름이다. 화산이라는 명칭은 사방에 진달래꽃이 가득하여 붙여 졌다고 한다. 화산천을 중심으로 마을이 꽃잎 모양으로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망실에는 매방앗간이 보존되어 있다. 그전에는 디딜방아가 있었다고 한다. 발로 디뎌 곡식을 찧는데, 보통 양다리 디딜방아로 2명이 힘어주어 딛고 다른 1명은 알곡을 집어 넣는다. 3명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넘어지지 않도록 위에서 늘어뜨린 줄을 붙잡고 방아를 찧는 방식이다. 곡식 외에 떡을 찧거나 고추를 빻기도 하며 메주콩을 이기는데 쓰였다. 그후로 디딜방아의 수명이 다 되자 1916년 봄에 대술 송석리 백저울 서씨네서 방아를 사왔다.

연자방아는 망실 동민(곽한영, 곽건영, 곽덕영)이 구입했다. 돌로 된 방아는 너무 무거워 소 2마리가 앞에서 끌고 주민들이 뒤에서 밀어 꼬박 하루걸려 운반했다고 한다. 주로 보리 방아를 찧었고 동네에 부잣집에서 소를 키워 마을 사람들을 위해 빌려주었다. 빙빙 돌아가면서 방아가 찧어지면 볕 좋은 곳에 널어두었다가 다시 돌려서 채에 까불렀다.



부잣집은 쌀 농사를 지어 같은 방식으로 방아를 찧었다고 한다. 먹고 살기 어려울때라 보리쌀은 쌀대로 먹고 겨를 곱게 빻아서 개떡을 쪄먹었다. 보리를 맷돌에 갈아 채로 쳐서 가루에 물을 넣고 보리죽을 끓여 먹었다. 밀은 삭수제비(삭 주물러서 만들어진 이름)를 만들어 간장물에 넣어 먹었다. 1947년 곽노수씨가 파손 된 것을 고쳐 사용했으나 6.25때 없어졌다.

1971년 새마을 사업을 하면서 관리를 안해 땅에 묻혀있던 것을 마을 사람들이 발굴하고 곽길신씨가 자신의 땅 15평을 기증해서 1983년 마을 공동 소유물로 복원했다. 연자방아는 소를 이용해 방아를 찧어야 할 만큼 크다.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었다.

망실은 산으로 쌓여있어 아늑하고 따뜻한 마을이다. 연자방아 옆으로 큰 느티나무가 있다. 마을마다 나무가 심어져 있는게 부러워 송석리에 나무하러 갔다가 캐와서 심었다고 한다.



보름날에는 줄다리기, 꽹과리, 장구를 치며 집집마다 축원을 해주고 쥐불놀이도 했다.

매년 8월 14일은 짚과 조대 를 묶어서 소 모양을 만들어 머리에 쓰고 좌우로 왔다갔다 하면서

춤을 추며 놀았다고 한다.

망실에만 내려오는 전통놀이다.


보름날에는 풍장을 치며 집집마다 축원을 해주고 쥐불놀이도 했다. 마을에서 부유하게 살았던 관한영, 곽건영, 곽덕영은 주민들에게 술을 해주고 모든 면에서 베풀어 주었다고 했다. 매년 8월 14일은 짚과 조대를 묶어서 소 모양을 만들어 머리에 쓰고 좌우로 왔다갔다 하면서 춤을 추며 놀았다고 한다. 화산리(망실)에만 내려오는 전통놀이다. 6.25지나 새마을운동사업까지 계속 이어져 놀이를 했지만 몇 년전부터 맥이 끊겼다. 보름날에는 밥을 훔쳐 느티나무 밑에서 먹고 어느집 제사상 차려놓은 것까지 훔쳐가서 혼이났다는 이야기도 있다.

느티나무를 심어놓고 10년쯤 되었을까. 나무가 죽어가서 콘크리트를 깨고 물을 주고 보살피자 건강하게 살아났다. 지금도 느티나무는 마을 주민에게 그늘을 내어주는 사랑방이다. 여름이면 마루에 앉아 낮잠도 즐기고 놀이를 하고 맛있는 음식도 해서 나눠 먹는다.

망실은 마음이 넉넉하고 살기좋은 마을이다. 이장님과 주민들의 뜻이 잘 맞고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철탑이 들어서면서 이상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주민은 철탑 세우는 일을 막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들어앉아 시위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철탑이 세워지기 전에 전국에 유명한 풍수지리 보는 사람들이 마을을 찾았다. 풍수지리상 동쪽을 향해 1년에 한 번 제를 지내면 동네 안녕과 풍년이 든다고 해서 두 세 차례 주민들이 떡을 하고 과일을 올리고 음식을 해서 술과 함께 제를 지냈다. 그후로는 버릇이 든다하여 마을 주민들 상의하에 지내지 않았다고 했다.

망실의 산은 풍수지리상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송장상이라 해서 시신을 7매로 묶어 놓은 형상이라고 했다. 산이 아래 중간 위로 나뉘어져 있는데 누가 산에 손을 대면 큰 화가 생긴다고 했다. 아랫산이 무너지거나 상하면 아래 사는 사람들이 죽고 중간 산을 건드리면 중간에 사는 사람들이 죽고, 윗산을 건드리면 위에 사는 사람들이 죽는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철탑이 들어서면서 아랫산을 건드렸는데 40대 젊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서 그때 당시 사망자가 많았다며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라고 했다. 올해는 자연적으로 아랫산이 무너졌는데 아주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망실에 귀신바위, 할미바위, 탱자 바위가 있는데 산 첫 자락과 끝자락에 귀신바위와 할미바위가 마주보고 있어서 그런일이 생긴다고 한다.

바위의 이름은 왜그렇게 전해지는지 모른다고 했다. 망실은 꼬부랑길로 한참 들어간다. 들어가면서 마을이 안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숨어 있다. 가을 단풍이 곱게 물든산은 한 폭의 수채화같고 집 한 채 한 채가 그림 같다. 마을 주민들은 바쁘더라도 마을을 위해 하는 일이라면 일손을 함께 한다.

마을 회관에서 둘러보니 철탑이 눈에 거슬린다. 철탑으로 인해 사망자가 많고 병이 많아져서 속상하다고 했다. 풍수지리상 산을 잘 가꾸면 좋겠지만 철탑때문에 산이 훼손되었다. 망실이 옛날처럼 아름답고 평안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사진 강은주